순수 우리 기술로 완성… 세계 학술대회 'TOP 500' 성과
성능 면에선 이미 세계 최고
세계 대회에서 속도 '277위'·'전력 효율 '32위'
IT 발전하려면 슈퍼컴퓨터 연구·개발 투자를
우리 기술로 제작한 슈퍼컴퓨터 '천둥'이 최근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2012 슈퍼컴퓨팅 학술대회' 톱(Top) 500에서 277위를 차지했다. 국산 슈퍼컴퓨터가 500위 안에 이름을 올린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20일 서울대학교 컴퓨터신기술공동연구소. '우우우웅…' 팬 돌아가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천둥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단단해 보이는 거대한 검은색 몸체에선 파랗고 노란 불빛이 쉴 새 없이 깜빡였다. "277위. 별것 아닌 것 같죠? 알고 보면 대단한 성과입니다." '천둥의 아버지' 이재진(45세)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가 싱글벙글 자식 자랑을 시작했다.
◇속도는 세계 277위, 전력 효율은 세계 32위!
천둥은 작은 컴퓨터 여러 개를 네트워크로 연결해 만드는 ‘클러스터형’ 슈퍼컴퓨터다. 컴퓨터 연결 단위가 되는 작은 컴퓨터를 ‘노드’라 부르는데, 천둥은 총 56개의 노드로 이뤄져 있다. 노드를 이어 붙일수록 성능은 점점 좋아진다.
이번 학술대회에서 공식 측정된 천둥의 계산 속도는 106.8테라플롭스(TFLOPS). “플롭스란 1초에 덧셈·곱셈·뺄셈 등 연산을 몇번 할 수 있느냐를 나타내는 단위예요. 천둥은 1초에 106.8조번의 계산을 할 수 있죠. 가정용 컴퓨터보다 1000배 빠르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재진 교수는 순수 국내 기술로 천둥을 완성했다. 기상청의 해온(77위)과 해담(78위), KISTI의 타키온II(89위) 등 우리나라에 있는 나머지 슈퍼컴퓨터도 500위권 안에 포함됐지만 모두 미국에서 들여온 것들이다.
전력 효율 순위인 ‘그린(Green) 500’에서는 32위에 올랐다. “‘탑 500’보다 중요한 게 ‘그린 500’이에요. 최고 수준의 슈퍼컴퓨터를 만들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게 전력이거든요. 슈퍼컴퓨터를 돌리려면 전기가 많이 들기 때문에 옆에 발전소를 짓기도 해요. 천둥은 노드당 성능이 최고 수준으로 전력 효율이 매우 뛰어납니다. 국내 슈퍼컴퓨터를 통틀어 이런 순위는 처음이에요. 모두 300위권이죠.”
◇저렴한 부품 사용해 6억원에 슈퍼컴퓨터 완성
이재진 교수가 본격적으로 천둥을 만들기 시작한 건 올 2월부터다. “올 초 16개 노드로 구성된 ‘스누코어’란 컴퓨터를 실험적으로 만들었어요. 규모는 작았지만 노드당 성능은 최고였죠. ‘규모만 늘리면 세계 500위안에 들겠다’는 확신이 들어 도전하게 됐어요.”
놀라운 건 6억원이 조금 넘는 비용으로 슈퍼컴퓨터를 만들었다는 사실. 300억원이 넘는 기상청이나 KISTI 슈퍼컴퓨터와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다. 한정된 연구비 내에서 슈퍼컴퓨터를 만들기 위해 연구진은 머리를 쥐어짰다. “천둥은 GPU(그래픽카드)를 가속기로 사용해요. 이번에 1위에 오른 컴퓨터는 개당 600만원이 넘는 고가의 GPU를 쓰는 반면, 천둥은 가정용 데스크톱에 들어가는 60만원짜리 GPU를 씁니다. GPU가 224개나 들어가니 600만원짜리를 쓸 수가 없죠.”
슈퍼컴퓨터에 사용되는 냉각 시스템도 자체적으로 개발했다. “슈퍼컴퓨터는 전력 소모가 커서 열이 많이 나요. 천둥에 사용된 GPU는 열이 나면 망가져 버리기 때문에 물로 열을 식혀주는 수냉 시스템을 만들어야 했죠.”
연구진은 8개월에 걸쳐 제작한 슈퍼컴퓨터에 ‘천둥’이란 이름을 붙여줬다. “‘꽈광’ 울려 퍼지는 천둥처럼 우리나라의 슈퍼컴퓨터 기술을 널리 알리라는 뜻으로요.”
◇“10년 안에 세계 5위권 슈퍼컴퓨터 만드는 게 목표”
이 교수는 인터뷰 내내 슈퍼컴퓨터 연구·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001년 슈퍼컴퓨터 기술이 오늘날 데스크톱 컴퓨터에 그대로 쓰이고 있어요. 당시 데스크톱 컴퓨터 기술은 지금의 스마트폰에 사용되고 있고요. 슈퍼컴퓨터 연구·개발에 투자하지 않으면 다른 IT분야에서도 뒤처질 수밖에 없어요.”
슈퍼컴퓨터 기술은 국가안보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미국은 핵실험을 하거나 군사 암호를 풀 때 슈퍼컴퓨터를 사용한다. 국가 재난상황에서도 슈퍼컴퓨터가 유용하게 쓰인다. 일본은 슈퍼컴퓨터로 쓰나미 예보를 한다. 쓰나미가 어디에, 어떻게 덮칠지 10분 안에 예측해 알려준다.
“현재 미국·일본·중국이 슈퍼컴퓨터를 만들고 있어요. 하지만 우리도 늦지 않았어요. 지금까지는 CPU만 쓰는 슈퍼컴퓨터가 대세였지만, 앞으로는 천둥처럼 CPU와 GPU를 동시에 쓰는 ‘이종컴퓨터’가 대세가 될 겁니다. 전력 소모도 적고 속도도 빠르거든요. 이종컴퓨터는 모든 나라가 똑같이 출발선상에 있기 때문에 가능성이 있어요.”
슈퍼컴퓨터 연구·개발을 위한 구심점으로 ‘국가슈퍼컴퓨터연구개발센터’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다. “5년 안에 20위, 그다음 5년 안에는 5위권 안에 드는 슈퍼컴퓨터를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웃음)
출처 https://kid.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1/25/2012112500887.html